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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논란이 심하다.
입학사정관제를 포함하여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분위기는 정성평가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십 년간 정량평가에 익숙했던 국민적 정서와 근래에 들어 제기된 사회적 공정성이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제기된 문제들이 다 이해가 가고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은 고교 교육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에 따라 교실 수업은 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위해 혁신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교사가 직접 설계한 다양한 수업 방식으로 기존에는 경험하지 못한 수업활동들이 실현되고 있다. 더욱이 2015개정교육과정은 학생의 선택권 확대와 문‧이과 통합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정한 과목으로 실시된 수능을 2022학년도 이후에는 어떤 과목, 시험범위는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 정부의 공약사항인 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5학년도 대입부터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이 다 다를 것으로 예상되어 수능 시험과목에 대한 논란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하튼 이러한 교육적 환경은 교육 수요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K양도 쉽지 않은 대학입시를 본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성공시킨 사례가 될 것 같다.
지금처럼 꽃들이 만개하며 봄의 도착을 알리는 시기였던 것 같다.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보장하고 권장하는 학교의 특성상 자율동아리 가입과 다양한 자율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우리학교는 일 년 동안 실시한 다양한 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평가하기 위해 연말에 창의적 체험활동 발표 대회를 실시하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 중 학술제를 개최한다. 특히 학술제는 교사의 개입 없이 학생들이 주도하는 ‘교사 불개입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다. 교사가 하는 것은 예산집행과 총괄 기획학생을 선발하는 정도이며, 각 팀별 팀장이 정해지고 팀별로 스텝들이 구성되면 행사의 절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학술제는 대부분 독서토론 발표대회나 과제연구 발표대회 혹은 학술포럼 등으로 진행되는데, 정해진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사였다.
하지만 K양의 경우는 달랐다. 평소 영어에 관심이 많은 K양은 영어에세이에 기반을 둔 10분 내외의 영어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학생들에게 영어 에세이를 작성하게 한 후 원고 교정을 하고,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빌려 10분 내외의 시간동안 원고를 보지 않고 강의를 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K양의 제안에 대해 나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못했다. 나름 학술제 자체에도 많은 프로그램이 이미 진행 중이었고, 아이들 스스로 주제에 맞는 에세이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두 번의 간청에 마지못해 허락을 하고 계획서를 가져오라고 말한 후 활동의 방향을 잘 설정하라는 충고도 덧붙여 주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영어 에세이 기반 강의’ 활동은 대성공이었다. 20명 가까운 학생이 신청을 하였고, 모두가 정성껏 작성한 에세이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았다. 상도 주지 않은 활동에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어에 대한 관심, 그리고 활동에 대한 신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고를 교정하는 학생들을 구성하여 학생들이 작성한 원고를 정성스럽게 교정하여 주었고, 서로 짝을 이루어 작성한 원고를 점검해 주고 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프레젠테이션을 해보면서 발음을 고쳐 주는 아이, 사회를 보는 아이, 원고를 교정해 주는 아이, 심지어는 발표 도중 원고를 까먹은 친구들을 위해 앞자리에 앉아서 다음 문장을 점검해 주는 아이까지 구성되어 ‘영어 에세이 기반 강의’ 활동은 어떤 다른 활동보다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작년 겨울에 세 번째 ‘영어 에세이 기반 강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예년과는 달리 사회를 보는 학생까지 영어로 진행을 하였고, 23명이 참여한 ‘영어 에세이 기반 강의’ 활동은 학생들의 성원으로 가장 호응이 좋은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학생들 모두가 영어를 잘 하거나 발음이 좋은 학생들은 아니었다. 아이들 스스로 활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다양한 교과 관련 활동 중에서도 영어와 관련하여 본인의 관심과 적극성을 보여준 활동이었다. K양 덕분으로 많은 학생들과 후배들까지 좋은 활동이 연계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학생 개개인의 적극성과 주도성, 교과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아이가 가진 성향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전정신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는 학생들이 주도했었던 것 같다.
이 또한 학생부종합전형의 긍정적인 측면이리라!!
아침까지만 해도 봉우리 져 있던 교정에 있는 벚꽃이 오후가 되자 순식간에 만개해 버렸다. 활짝 핀 벚꽃은 봉우리를 터트리기 위해서 1년간의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금 더디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는 모습이 시간이 지나 어느 때인가 활짝 만개하는 벚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