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 01스토리
나는 휘문고에 1986년 3월 부임하여 31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학년의 학급 담임과 교과 담당을 맡으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현재 34세인 A군을 꼽고 싶다.
A군은 내가 담임을 맡은 적은 없지만, 현재까지 17년째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
A군은 국내 상위권 대학 영문학과 2학년을 마치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학을 하였고,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상위권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을 하여 금년에 졸업을 하였고, 최근에는 미국 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A군은 내게 소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2001년에 교과 담당교사로 고2 인문계 학생인 A군을 처음 만났다.
그는 1학기 중간고사 주관식 문제의 채점 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왠지 무례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불쾌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차게 따지는 모습이 꼿꼿하고 당당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맹랑한 고2 학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A군이 고3이었을 때 나는 고2에 이어 교과 담당교사를 맡았으며, 옆 반 담임교사로서 자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2003년 재학생 신분으로 상위권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A군은 입학하자마자 전공과 교양 지식의 습득과 어학 능력 향상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평소 근검절약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A군은 겨울 내내 얇은 니트 하나로 극기 훈련하듯이 지내기도 했었다. 이즈음 자신이 알바해서 돈을 벌었다고, 추운 겨울날 그 얇은 니트 하나 입고 직접 과일 한 박스를 사 들고 왔던 적이 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따뜻한 식사 한 끼 먹여 보내려 했는데 거절하고 추위 속으로 달아나듯 뛰어간 A군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A군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삼반수 만에 2005년에 교육대학에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A군의 교육대학 등록을 강력하게 반대하셨고, 신용카드를 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고민스러웠던 A군은 나에게 의견을 물었고, 나는 A군의 당시 심정과 의지를 들어보고 반대 의견을 냈었다. A군은 결국 교육대학에 등록을 하지 않고 영문학과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A군은 넘치는 학구열(장학금 수혜 대상자가 되었음)로 본인의 전공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모의 희망대로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A군은 평소 병원 봉사활동을 하시던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베풀어나가기도 했다. A군에게 봉사는 오랜 습관이자 자신의 생활 그 자체였던 것 같았다. A군은 군 복무 기간에도 휴가를 이용하여 몽골 등지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하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니세프에서 인턴으로 약 1년 간 봉사관련 업무를 맡아보고, 서울국제고 기숙사에서 부사감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상담자로서의 경험을 자청하기도 하였다.
2년 가까이 유학 준비를 하고나서 2009년에 편입학이 힘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 후 극빈자 같은 생활을 하며 밤낮으로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아 학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A군은 미국 명문고 졸업생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학교에서 고등학교 잠바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휘문고 잠바를 구해달라고 나에게 요청을 하였다. 휘문고에는 일반학생들이 구입할 수 있는 학교 잠바가 없어서 휘문고 운동부인 야구부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선수용 봄용 얇은 잠바, 가을용 두꺼운 잠바 두 개를 구입하여 선물로 보낸 적도 있다.
A군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국내 사회복지시설뿐만 아니라 국외(몽골, 탄자니아, 온두라스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구호와 개발의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호와 개발을 위해서는 의사가 적격이라고 판단을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2013년에 국내 상위권 대학 의학전문대학원 리더십전형(1명 선발)에 합격을 하였다.
인문계 출신자가 의대 학부 및 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예는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A군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자연계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관계로 낯선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하였지만, 학사 경고의 위기에 놓이면서도 의대 공부를 놓지 않았다. 2015년에는 전국 의대생 중 단 2명에게만 주어지는 청년슈바이처상(의대생 사회활동 부문: 구호와 개발의 현장에서 일하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의대 입학 전부터 활동의 종류가 다양하고 폭도 넓었다는 점이 수상 이유였음)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A군은 재학 중 유급 한 번 없이 금년 2월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이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현재 미국 의사 시험에도 도전하고 있다.
2001년에 A군을 만나서 17년째 매년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직접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다. 금년 5월 가정의 달에는 KBS 가요프로인 ‘배철수 7080 600회 특집’ 프로에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 4명(A군, A군 어머니, 나, 아내)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녹화하는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A군은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훌쩍 떠날 것이다.
소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A군과 얼마나 오랫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