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 01스토리
제가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물어 보는 말이 있습니다.
“ 학생은 꿈이 무엇인가? 장차 어떤 직업인이 되고 싶은가? 어떤 대학, 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라고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이때 위 질문에 막힘없이 바로 대답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대략 10명 중 2명 내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나중에 수능 성적 나오는 거 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10대 후반의 동갑(同甲)내기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미래 목표에 대한 인식(認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납니다. 그리고 목표가 명확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성적도 더 향상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로스쿨(Law School)이 2009년에 도입(현재 25개 대학에서 매년 2,000명 선발하고 있음)되었으니 아마 2010년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기 초에 한 학생을 불러 면담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학생은 서울의 명문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再修)를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상위권에는 속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면담 후 나중에 알고 보니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재수를 선택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을 처음 보았을 때 역시 똑같은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학생의 꿈이나 미래 직업은 생각해 보았나?”
“네, 저는 학교 졸업 후 영화제작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면, 대학이나 학과는 정했나?”
“네, 학부는 00대학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로스쿨에 진학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경영이나 법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음..대단하군..그런데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그동안 영화도 많이 보았을 텐데, 학생이 보았던 영화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
“네, 글래디에이터입니다. 로마시대 검투사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는 벌써 11번이나 보았습니다.”
“뭐라고? 같은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았다고? 한 두 번 보면 줄거리를 다 알게 되어 재미없었을 텐데..”
“아닙니다. 볼 때마다 다릅니다. 그냥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볼 때마다 장면 하나하나, 배우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위 학생처럼 어떤 직업이나 일에 대해 학생 본인이 명확한 목표를 갖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에 자발적인 관심과 열정이 생기게 되어서,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되나 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나 기대가 아닌, 우리 학생들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나 직업과 관련된 학과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대학들은 학부 모집대신 다시 학과 모집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다양한 학과나 세부 전공으로 나누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고3학생이 되어 수시나, 정시 모집에서 학생들이 선호하여 지원하는 학과는 여전히 인문계는 상경계열, 자연계는 의‧약학 계열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그렇게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스쿨 도입 전에는 법학과가 가장 인기 있었는데, 그 이후는 경영학과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환경 변화로 생긴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지원해야 할 학과가 아버지로 인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판사,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법대를 가야한다는 말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아버지에게서 듣고 자랐기 때문입니다.(당시 농촌에 사시던 부모님들의 꿈은 대부분 다 그러하셨을 겁니다.) 당시에는 대학들이 신입생을 전‧후기로 나누어 모집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전기 대학에 법학과를 지원하여 낙방(落榜)하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재수를 한 상태여서 마지막으로 후기 모집 대학에 지원해서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지원배치참고표(그 당시에는 지금 보다 더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를 참고하여 제 성적과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대해 제 스스로는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眞心)으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조언이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저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혼자서 져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등의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선생님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교육학과였습니다. 당시에는 교육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 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냥 사범(師範)대학이니까 졸업하면 선생님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선택이 지금의 제가 하고 있는 일로 연결되고 있으니 운명이 따로 있나 싶기도 합니다.
미래의 직업, 학과 선택은 당장의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의 대학, 학과 선택 시 우리 학부모님이 크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런 사례들을 많이 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학부모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학부모님의 바람이나 뜻이 자녀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면 믿을 수 있는 제3의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여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래디에이터(Gladiator,劍鬪士):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의 파란(波瀾, 물결 파, 물결 랑) 많은 인생과 사랑, 복수를 그린 미국영화, 2000년 제작, 리들리 스콧 감독, 러셀 크로 주연(출처: 두산백과)
*사범(師範): 스승 사, 본보기 범-남의 스승이 될 만한 모범이나 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