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서울대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에 ‘2023학년 서울대 신입생들의 서재’가 공개됐다. 서울대 새내기 5명이 자신이 진로와 가치관을 확립해가는 데 영향을 받은 책을 꼽아보는 코너다. 지난해까지는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통계를 공개해왔으나, 올해는 신입생들이 각 도서에서 찾은 의미에 중점을 두고 소수의 책을 상세히 소개하는 방향으로 해당 코너를 개편했다. 각 신입생이 어떻게 책의 내용에 접근했는지, 책을 통해 어떤 점을 느끼고 생각하게 됐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어 수험생은 서울대가 권장하는 ‘진정한 독서활동’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4학년부터 자소서가 폐지, 서울대의 대학별 문항(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은 더이상 활용되지 않지만 서울대는 독서활동을 꾸준히 중요시하고 있다. 대입에 직접적으로 활용되지 않더라도 독서를 통해 길러진 다양한 역량들은 여러 영역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학종 가이드북을 통해 밝힌 면접 및 구술고사 대비 팁 역시 ‘독서활동’이다. 특히 다소 깊이 있는 제시문을 활용하는 인문학 사회과학 관련 면접 및 구술고사는 단기간의 준비로는 해결할 수 없어 평소 독서활동을 성실히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는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더 알고 싶은 분야의 전문서적을 찾아 읽을 수도 있고, 호기심으로 책을 집어들 수도 있다. 책을 읽다가 생긴 궁금증으로 또다른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지 읽어가는 사이에 생각하는 힘, 글쓰기 능력, 전문지식, 의사소통 능력, 교양이 쌓여가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고교생활 전반에서 드러날 것이다. 타의에 의한 수박 겉핥기 식 독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책 가운데 그 책이 나에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읽고 나서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생각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서울대 신입생들의 서재’에서 소개된 책은 ‘코스모스(칼 세이건)’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공공선택론(김성준)’ ‘칸트와 헤겔의 철학(백종현)’ ‘대한민국 시험(이혜정)’ ‘펭귄과 리바이어던(요차이 벤클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죽음연습(이경신)’ ‘장자(장주)’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 짐 메이슨)’ 등 10권이다.
<자연과학 새내기의 서재.. ‘코스모스’ ‘부분과 전체’>
자연과학 새내기 C가 의미 있게 읽은 책은 ‘코스모스(칼 세이건)’와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다. 이 중
‘코스모스’는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았다. ‘코스모스’에서 저자는 고대의 천문학으로부터 현대의
탐사선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인류의 지적 탐구와 성과를 기반으로 사고를 확장시켜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서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C는 이 책에
나온 학자 중에서도 근원적인 원리로부터 이론의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과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던 뉴턴의 업적에 주목했다. 그로 인해
자연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부분과 전체’는 C가 물리학과로의 진학을 고려하게 되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위대한 과학자가 쓴 자서전으로부터 그에 관한 좋은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의 저자 하이젠베르크는 학문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문이 탄생한다고 강조하면서 책 전체를 대화로 구성해 어떻게 학문 활동이 이뤄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C는 저자와 주변인물이 과학적 사실이나 철학적 해석에 관해 나누는 문답을 보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양자역학 성립기의 대화에서는 미지의 현상을 마주한 과학자들의 태도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대목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C는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현재까지의 매체 중 가장 정제된 형태의 지식과 의견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현대에는 사진 소리 영상 등 전달수단이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이론적 사상적 기술적인 내용들은 여전히 텍스트를 거쳐야 전달할 수 있다. 추상적인 내용과 지식들은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고, 때로는 책으로만 접할 수 있다. 각 학문분야의 최전선을 달리는 내용을 담은 논문은 책, 문서의 형태로 출판된다. 고차원적인 지식과 담론을 제대로 습득하고, 그러한 지식의 생산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책과 텍스트라는 매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독서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과학 새내기의 서재.. ‘공공선택론’ ‘칸트와 헤겔의 철학’>
사회과학대학 새내기 K가 의미 있게 읽은 책은 ‘공공선택론(김성준)’과 ‘칸트와 헤겔의 철학(백종현)’이다. ‘공공선택론’은 K가
정치의 경제학적 접근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책이다. ‘행정가는 어떻게 행위하는가’와 같이 여러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에
주목했다. K는 “경제학을 단순히 시장뿐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제를 좁은 의미로 생각했기에
논리적인 분석 과정에서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K가 경제학을 ‘선택과 대안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생각하며 경제학적인
‘접근’을 학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책을 통해 선거이론 법경제학 지방자치 등을 배우게 됐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간 불평등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K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해결방안을 탐색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정하게
됐다.
‘칸트와 헤겔의 철학’은 K가 삶의 방향과 관련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칸트의 사상’에 대해 깊이 알려준 책이다. 본인이 진로로 결정한 경제학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일례로 K는 “경제학에서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으나 지향점으로는 결함이 있다고 느꼈다. 특히 쾌락주의와 관련해서는 행복이 과연 삶의 목적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성을 갖춘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는 생존 이외의 많은 과제가 있다. 인간을 목적으로도 대하라는 칸트의 말처럼 존엄성을 보장하고 각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이루는 것이 경제학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K는 독서를 통해 깊이 있는 학습을 하고 다양한 지식을 얻어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학교 수업은 여러 학생의 수준에 맞춰 진행된다. 학습 내용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학습의 여지를 남겨두게 되는데, 이때 학교수업에서 배운 내용 중 좀 더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면 독서를 통해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책에는 사고가 유도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서술돼 있어 자신이 지닌 사고의 비약을 줄이고 엄밀한 논리를 접할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권리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알게 됐다면 ‘소득 재분배는 정의로운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스스로 근거를 들어 생각을 정리해 보라는 것이다. 혹은 직접적으로 소득 재분배의 정의를 다루는 책을 읽으며 타당성을 따져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이후 글이나 말로 자신의 생각을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다. K는 “학교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발표를 할 때, 면접을 볼 때 등 독서를 통해 갖춘 지식이 많으면 이를 활용해 다양한 의견을 원활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사범대학 새내기의 서재.. ‘대한민국의 시험’ ‘펭귄과 리바이어던’>
사범대학 새내기 K는 ‘대한민국의 시험(이혜정)’ ‘펭귄과 리바이어던(요차이 벤클러)’를 의미 있게 읽었다. ‘대한민국의 시험’은
교육에 막연한 물음을 던지고 있던 K에게 교육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열의를 안겨주게 된 책이다. 수업을 바꾸려면 평가부터
바꿔야 한다며 결과 중심적인 시스템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저자의 관점에 흥미를 느꼈다. 객관식 시험이 공정성 영역에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의문을 가지게 했고, IB시험 형태를 참고해 서술형 시험의 도입이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데 확신을
얻게 했다. K는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이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지적 성장이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선결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는 독서 교육과 토론 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탐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건강한 경쟁’의 존재 여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읽은 책이다. 책을 통해 갈등과 대립, 번아웃과 우울로 질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협력 정신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토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또한 협력을 불러일으키는 대화는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됐고, 자율동아리 시간에 5분 안부 묻기 시간을 넣는 등 본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해당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실천 단계까지 나아갔다.
K는 책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생각의 무한한 발전을 꼽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정립하고 무너뜨리고 또 정립하는 과정의 연속으로, 도덕관과 세계관에 대해 새롭게 사고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보의 다양성과 지식의 깊이를 얻기 위해서다. 고교 수업시간에 다룰 수 있는 학문의 깊이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과 내용 주제가 있다면 관련 책들을 찾아 호기심을 충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K는 “독서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학생부용이 아니라 삶을 더 진정성 있고 가치 있게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범대학 새내기의 서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죽음연습’>
사범대학 새내기 J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죽음연습(이경신)’을 의미 있게 읽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어떤 교육학자로 나아가야 할지 이정표를 세우는 데 영향을 받았던 책이다. ‘왜 교육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던 중 해당 도서는 교육의 존재 이유에 대해 ‘천문’이라는 힌트를 줬다는 설명이다. 천문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지능력과 이를 갖추기 위해 급속도로 성장하는 뇌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화에 용이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우리의
뇌는 ‘인간다움’이 협력과 상생에서 시작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J는 교육의 근본적인 이유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내재된 자질을 끌어내는 것’이라 결론지었고, 인간다움을 우선시하는 교육학자가 되기로 다짐하게 됐다.
‘죽음연습’은 J가 자신의 신념을 설정하는 데 영향을 받은 도서다. 1등급을 맹목적으로 좇았던 강박과 그로 인한 불안, 번아웃의 공허함에 찾아온 공부에 대한 회의감.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읽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죽음을 떠올리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으나 막상 J는 인생에는 어떠한 의미와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의미와 가치는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주체적인 삶을 최고의 신념으로 설정하게 됐다.
J는 독서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뇌과학, 진화심리학, 아동발달, 삶과 죽음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욕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독서 토론 소모임을 만들어 매주 직접 발제한 주제에 대해 분야를 넘나들면서 토론했던 경험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뿐만 아니라 면접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J는 “독서는 더 이상 직접적인 평가 요소가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깊이 있는 탐구와 사고를 해본 학생은 학생부의 다양한 방면에서 ‘책 많이 읽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인문대학 새내기의 서재.. ‘장자’ ‘죽음의 밥상’>
인문대학 새내기 H가 인상깊게 읽은 책은 ‘장자(장주)’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 짐 메이슨)’이다. ‘장자’는 타자를 향하는
태도를 가르쳐준 책으로 꼽았다. 사실과는 달리 가상의 공자가 제자들을 버리고 자연에서 동물들과 어울리는 우화가 있는데, 이 장면이
동등한 위치에서 타자와 대면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같이 스스로가 지닌 차별과 편견을 인정하는 것이
수평적 연대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단순한 우화와 문장에 담긴 전복적인 사유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H는
“’논어집주’와 ‘대학장구’를 한문 원전으로 읽는 공부를 하면서 때로는 성리학적 해석이 답답했다. 이에 반해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장자를 읽으면서는 해방감을 느꼈고, 문학도로서 기존의 통념과 사상에 의문을 던지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죽음의 밥상’은 생활과윤리 과목에서 학습한 내용과 연관된 책이다. H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할 것을 주장한 싱어의 실천 윤리학에 마음이 움직였고, 현대 공장식 축산업의 잔혹성을 폭로한 해당 도서를 읽게 됐다고 밝혔다. ‘불완전한 실천도 의미가 있다’는 대목에 용기를 얻어 비거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태적 차원에서의 조화와 개별 생명체의 권리를 모두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을 스스로 정립하는 데도 영향을 받았다.
H는 ‘오래 들고 다녀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이 가장 밀도 높은 생각의 체험을 제공하는 사물’이라고 소개했다. 책을 읽으며 행간 너머의 의미를 추리하기도 하고, 활자 바깥에서 고유한 의미를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읽고 있는 내용에 관한 게 아니더라도 무슨 생각이건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H는 “독서는 나만의 속도로 타인을 상상하고 타자를 향하게 한다. 비단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하는 경험이다. 시험이 끝나고 여유가 허락된 휴일을 그렇게 보내며 입시에 찌든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책을 덮었다가 아무 때고 다시 펼치기도 했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는 불가능하거나 달갑지 않은 자유로운 ‘멈춤’이 책을 읽을 때는 가능하다. 한시라도 멈추기가 곤란한 오늘의 우리에게 각별히 소중한 자유”라고 전했다.













